
매일 저녁 퇴근길이 공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지어진 지 오래된 빌라촌이라 주차 공간이 정말 금값보다 귀합니다. 그래서 저는 집주인 아주머니께 매달 따로 주차 관리비 명목으로 십만 원을 더 내고 제 전용 주차 구역을 지정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닥에 제 차량 번호까지 큼지막하게 적혀 있고 주차 금지 표지판까지 세워두었으니 누가 봐도 제 개인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곳이죠. 그런데 며칠 전 비바람이 몰아치던 금요일 밤 제 인생 최악의 빌런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야근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도착했는데 멀리서부터 제 자리에 떡하니 세워진 하얀색 벤츠 한 대가 보이더군요. 비는 쏟아지고 몸은 천근만근인데 제 자리에 모르는 차가 서 있는 걸 보니 짜증이 확 밀려왔습니다. 차 앞유리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죠. 신호음이 한참 가더니 웬 젊은 남자가 아주 귀찮다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제 주차 자리에 차를 대셨으니 빨리 좀 빼달라고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었습니다. 아 지금 제가 친구들이랑 술 한잔하고 있어서 못 나가거든요. 그냥 근처 골목에 대충 대고 들어가세요. 내일 아침에 뺄게요.
저는 기가 막혀서 여기가 제가 돈 내고 쓰는 지정석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오히려 저보고 깐깐하게 굴지 말라며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니 그쪽 사정은 알겠는데 제가 지금 술을 마셨다니까요. 음주운전이라도 하라는 거예요? 정 급하면 내일 아침에 택시 타고 출근하세요. 제가 택시비 만 원 입금해 드릴 테니까. 그러더니 제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뚝 끊어버리더군요.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아예 제 번호를 차단했는지 수신 거절 메시지만 반복됐습니다. 비를 쫄딱 맞으며 서 있던 저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주차장으로 내려갔습니다. 당연히 차가 빠졌을 거라 생각했지만 벤츠는 어제 그 자리 그대로 당당하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어제 약속했던 오전 시간은 이미 지났고 저는 마침 그날 오후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지방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다는 생각으로 다른 번호로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남자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짜증을 내더군요. 아 진짜 아침부터 사람 피곤하게 하네. 내가 오늘 오후에 나갈 일 있으니까 그때 뺀다고요. 자꾸 전화하면 나도 화내요.
그 순간 제 머릿속에 아주 기발하고도 무시무시한 생각이 스쳤습니다. 저는 더 이상 말싸움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근처에 사는 제 친동생에게 연락했습니다. 동생은 마침 폐차를 앞둔 오래된 구형 에스유브이 차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 차와 동생의 차를 이용해 그 벤츠의 앞뒤를 아주 정밀하게 가로막았습니다. 바짝 붙여서 주차했기 때문에 차주가 나타나도 차를 빼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앞뒤 간격은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완벽하게 봉쇄했습니다.
주차를 마친 뒤 저는 각 차의 블랙박스 전원을 확인하고 그대로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출장지에 도착하자마자 업무용으로 쓰는 제 서브 휴대폰을 아예 꺼버렸습니다. 그 남자가 제 번호를 알고 있으니 분명히 난리가 날 게 뻔했거든요. 예상대로 제 개인용 휴대폰은 조용했지만 꺼둔 업무용 휴대폰에는 수백 통의 부재중 전화와 협박 섞인 문자들이 쏟아지고 있었을 겁니다. 출장 기간 내내 저는 아주 평온한 마음으로 업무를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3박 4일의 일정이 끝나고 수요일 저녁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멀리서 제 차 주변에 서성거리는 한 남자가 보였습니다. 며칠 사이 얼굴이 퀭해진 그 벤츠 차주였습니다. 제 차를 보자마자 그 남자가 달려와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미쳤어요? 내가 지금 며칠 동안 차를 못 써서 손해가 얼마인 줄 알아? 경찰 부르고 난리 났었다고! 당장 차 안 빼면 고소할 줄 알아! 저는 아주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 제가 갑자기 지방에 급한 출장이 생겨서 이제야 왔네요. 거기 통신도 잘 안 터지는 오지라서 연락을 전혀 못 받았어요.
그 남자는 경찰까지 불렀다며 기세등등하게 나왔지만 경찰도 사유지 주차 분쟁에는 강제로 견인할 권한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온 모양이었습니다. 경찰은 오히려 저보고 원만하게 합의하라고 권유만 할 뿐이었죠. 저는 천천히 집주인 아주머니와 작성한 주차 구역 계약서를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이 자리는 제가 정당하게 비용을 지불하는 제 소유의 임대 공간이고 당신이 무단으로 점거해서 제가 지난 며칠간 큰 불편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네가 어제 호기롭게 말했던 택시비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나흘 동안 제가 출장지에서 이동하며 쓴 택시비와 렌터카 비용 그리고 제 자리를 무단 점거한 것에 대한 일일 주차비까지 합쳐서 청구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니면 계속 그렇게 계시라고 저는 내일부터 또 다른 곳으로 여행 갈 예정이라고 으름장을 놓았죠. 그 남자는 처음에는 펄펄 뛰며 욕을 하더니 제가 진짜로 다시 차 문을 잠그고 집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제야 무릎을 굽히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차 좀 빼달라고 자기가 이번에 중요한 미팅도 놓치고 회사에서 잘릴 위기라며 울먹이더군요.
결국 저는 그 남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문을 작성하게 하고 제가 겪은 모든 금전적 손해를 즉시 계좌로 입금받은 뒤에야 차를 빼주었습니다. 그 남자는 차를 빼자마자 도망치듯 주차장을 빠져나갔고 그 이후로 우리 빌라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건 무개념한 사람들에게는 말로 하는 설득보다 똑같이 혹은 그 이상으로 갚아주는 행동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남의 소중한 권리를 침해하고도 당당하게 굴던 그 남자의 최후를 지켜보니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상식 밖의 사람들이 많지만 그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내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주차 빌런 때문에 고생하고 계신다면 참기만 하지 마시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본인만의 확실한 사이다를 날려보시길 바랍니다. 평화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 지켜내는 것이라는 말을 실감한 일주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제 주차 자리에 서 있는 제 차를 볼 때마다 그날의 통쾌함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벤츠 차주가 입금해 준 돈으로 부모님 모시고 맛있는 소고기 사 먹으면서 그동안의 고생을 다 씻어냈습니다. 인생 최대의 사이다 복수극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신 여러분도 모두 무개념 빌런 없는 평화로운 일상만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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