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태움글) 9년 전 저를 태운 당시7년차 간호사가 간호학과 교수님이 되셨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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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썰

(간호사태움글) 9년 전 저를 태운 당시7년차 간호사가 간호학과 교수님이 되셨대요.

간호사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간호사 태움을 공론화 해달라는 많은 분들의 격려에 용기내어 네이트 판에도 글을 올립니다. 결혼시집친정과 관련은 없지만 
이곳 화력이 좋다하며 많은 간호사 분들이 추천해 올리게 되었어요... 
(처음에 간호사 커뮤에 올렸던 글 복붙이라 의학용어가 섞였어요 그래서 가로치고 설명 덧붙였습니다.)

저는 간호사입니다. 하지만 네일아트라는 취미에 빠졌고 무료 모델을 구해 종종 사람손에 네일을 하고 있어요. 

 ICU(중환자실) 신규 시절 Back care(욕창방지를 위한등간호) 하느라 손등에 마찰이 심해 피가 나기도 하고 알콜소독제와 약품에 건조해지고 앰플에 자주 베이고 하다 보니 손이 성할 날이 없었는데, 네일아트를 배워서 하니 너무 행복했었거든요. 취미로 몇 년간 이어서 하다 보니 지금은 실력이 괜찮은 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오늘 당근마켓에서 구한 손모델 분이 다음달 실습나가기 전 마지막 네일을 받고 싶다고 온 간호학과 학생분 이었는데, 제가 C대학교 병원 중환자실 출신이라고 하자, 자신이 다니는 H대학교 간호학과에

이번에 새로 오신 학교 **나 교수님이 C대학병원 중환자실 출신이신데 아느냐고 하셨어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제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손이 떨려서 네일아트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오래 지나서 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요즘 많은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와중에
저는 직장 내 폭력을 당했던 사실조차 사실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2012년 6월부터 2013년 7월까지. 약 13개월 C대 병원 EICU(Emergency Intensive Care Unit:응급중환자실)다니는 동안, 일찍 일어나 5시에 나가서 보리차를 끓이고 세탁실에서 올라온 선배들 옷 무더기를 받아다 찾아서 예쁘게 개어서 선배님들 각자 옷장에 넣어드리고 커피를 타고 빵을 예쁘게 썰어 놓고 해야 했던 것도 힘들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중환자실 안에 갇혀서 수많은 다른 선배들 앞에서 속수무책 폭언, 폭행을 당해야만 했던 시간들이었어요. 


ventilator(인공호흡기)걸고 full sedation(안정제로 재움, 억지로 기계가 숨쉬어 주는 것 제정신에 견디기 어렵기 떄문)중인 환자들, 그리고 보호자가 없는 폐쇄적인 중환자실 안에서, 저는 백의의 천사가 아닌 백의의 전사가 되어야 했고

군대에서도 옛날옛적에만 있었다고 하는 그런 가혹행위를 견뎌 내야만 했어요,
유난히도 심하게 괴롭히시던 선생님들 이름 끝 글자를 따서 신규들끼리, 나나, 미미, 주주라고 몰래 부르곤 했는데,

그중 **나 선생님(나나) 이 가장 저를 아니 저희를 힘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간호학과 교수님 이라뇨? 그 누구에게도 모범이 되거나 가르침을 주셔도 될 만한 분이 절대로 아니십니다. 

제게 수없이 폭언, 폭행, 부모욕, 대선에서 특정후보 뽑기를 강요하고, MRSA환자에게 뽑은 가래통을 뒤집어씌우시고 chest potable (스스로 찍으러 못가는 환자 엑스레이를 찍기 위한 기계) 오면 그 앞에 보호장비 벗고 서있게 시키면서 “방사능 많이 맞아라~” 낄낄거리고 주문을 외시던 분인걸요.

몇가지 기억들을 적어보겠습니다(순한맛부터..)
Back care 할 때 일부러 환자 대변쪽으로 제가 고꾸라지게 민다던가, 

CRRT(24시간투석기) 관류액 엄청 큰 거 양손에 하나씩 들고 오게 시키고(액체인데다가 하나 들기에도 너무 무거운데 두개씩 안들면 때림, 본인환자 CRRT, 인공호흡기 프라이밍이나 세팅, 키트체인지 신규한테 시키고 빨리 못하면 때림)

의미없이 EKG포타블 기계(활력징후,심전도 등을 측청하는 기계, 중환자실 환자가 CT, MRI, 수술 등으로 이동 시 사용함) 양손에 하나씩 들고 가져오랫다 갔다놓으랬다 똥개훈련 시키고 그러다 힘들어 하는 기색 보이면 덩칫값 못한다고 때리고(이것도 꽤 무겁습니다)

 

 

 


나이트때 환자들 Oral care (구강간호:입안의 가래딱지들 닦아내주고 면도, 세안, 피부간호도 해 줌) 하면 면도 덜 된 털 한가닥이라도 있으면 소리지르면서 다시 하라고 하고 그러다가 환자분 얼굴 살짝 베이기라도 하면 또 주먹질... 제가 그 이전에는 얼굴 면도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의식없고 인투한 환자 면도를 싸구려 일회용 면도기로 완벽하게 면도 못해서 많이 혼났죠.


그리고 석션 10분전에 한 환자 숨소리 가릉거린다면서

10분전에 진짜 석셨했냐->네 했습니다->거짓말하지마! 하며 명치맞음
10분전에 진짜 석셨했냐->아니요..->너 지금부터 10분간 숨쉬지마! 하고 명치맞음

뭐라고 하든 얻어맞는 결말이었어요.
분노조절 장애가 누가봐도 엄청 심각한 사람이었어요....

차라리 걍 욕하지 말고 어차피 때릴꺼 소리지르지 말고 빨리 얻어맞고 끝났으면 좋겠다.. 오늘은 그냥 차라리 주먹부터 날아오면 좋겠다... 그런 생각 할 때도 많았어요.

제가 그당시 라네즈에서 나온 무슨 송혜교씨가 선전하는 동그란 립스틱을 썼는데, “니가 그렇게 싸구려를 쓰니까 그렇게 못생긴거야, 나처럼 샤넬을 써야지” 아니 사주고 뭐라고 하시든가요.....

청주에 당시 백화점도 변변찮았는데 그거사러 서울갔다오면 언제 그렇게 또 공부안하고 나돌아다녔냐고 때릴꺼면서....

저만보면 맨날 못생겼다고 뭐라고 해서 화장을 안 할 수 없었는데 맨날 폭언이 내가 울어야 끝나서 맨날 팬더눈으로 퇴근.... 안울면 안빌면 계속함 나나님 체력 너무 좋으셨음... (나나님은 약간 손예진 과의 얼굴 예쁘장한 얼굴에 키도 170조금 안되고 늘씬한 체형) 저는 당시 스트레스 먹는걸로 풀어서

입사시 174cm/56kg-->세달만에 174cm/72kg 됨
다른 동기들은 살 빠지는 애들도 있는데 혼자 찐다고 또 그걸로 엄청 괴롭힘

 
데이근무(7AM~3PM이 보통) 끝나고 동기들과 병원근처 피자헛?에서 창가자리에 앉아 피자를 먹었어요. 서로 너무 힘들었고 화장실 한 번, 식당은 당연히 못 다녀온 힘들었던 데이를 마친 후 첫 끼니를 먹는 자리였는데,

 

 

 


**나 선생님께서 우리가 피자 먹는 모습을 지나가다 보셨는지, 

다음날, “니들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해? 어제 뭘 잘못했는지 말해봐 내가 다 봤어” 하셨어요. 신규는 존재 자체가 죄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셨고 제가 일찍 출근해 물품 카운트를 하고 있으면 “아 ㅇㅇ오늘도 너랑 데이냐!” 하시며 무릎뒤를 발로 차서 넘어뜨리기도 하셨기에, 저는 쫄아서 무슨 잘못인지 제발 알려달라고 비굴하게 말했었어요.

“니들 어제 끝나고 내가 공부하라고 했는데 피자 먹고 있더라? 그것도 아주 대놓고 보란 듯이 창가자리 앉아서, 니들이 완벽해? 뭘 잘했다고 대놓고 퇴근하자마자 피자를 먹어? 나같으면 일 거지같이 하는 거 죄송스러워서라도 바로 집에가서 숙제하고 공부하고 책 한자라도 더 보려고 할 텐데! 그래놓고도 뭘 잘못했는지 몰라?!!!!악악악!!” 그야말로 히스테리였죠... 데이를 밥도 못먹고 오전5시부터 오후 4,5시까지 병원에 있었는데 오후 5시 넘어 먹는 첫 끼니조차 죄라니, 그때 그 분이 7년차 정도셨는데 제가 8년차가 된 지금도 그때 그 분을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또 제가 중환자실 있으면서 딱 한번 인계받은 3분이 모두 제 듀티(근무)에 expire(사망) 하셔서 환자가 없었던 날이 있었어요...

그런 날 있잖아요. 날 좋다가 갑자기 비가 질척하게 부슬부슬 오면서 몹시 흐리고 갑자기 추운 날, 그런 가을날이었는데 

A-Line (동맥혈액에 넣은 관으로)으로만 BP 30~50 측정되는 DNR환자분들.. 
(혈압이 너무 낮아 혈압계로는 측정이 안되는, 심폐소생술 안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환자)
그런 NS(신경외과)환자분들 3분을 독립한지 얼마 안 된 제가 맡아 보던 날이셨는데, 정말 저승사자가 한 명씩 이름 부르고 가기라도 한 것처럼 ABP (동맥혈압)30~50으로 1주일간 계시던 분들이 갑자기 ABP가 쭉쭉 떨어지더니 10분 간격으로 Expire 하셨어요. 그래서 한 묶음씩 되는 플로우 시트에 펀치로 구멍뚫고 수액세트 잘라서 묶어서 원무과에 내리고(당시 종이차트를 썼어요) 사망진단서 발급 확인하고 장례식장에 환자분들 모두 보내고 bed making(침상을 입원 받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듦)도 새로 다 해놓고 나서,

이제 back care 시작해서 같이 하려고 하자 나나님께서 재수없다고 네가 만지면 내환자 죽는다고 내환자 죽이지 말고 벽보고 서있으라고 하셔서....
(BACK CARE는 보통 인공호흡기, 온갖 기계와 선들, 생명유지 장치들을 달고 있는 환자의 등 피부를 봐야 하기에 3~4명이 달려들어 하는 게 보통입니다)

ICU 엄청 그날 바빴는데, 신환(신규입원환자)은 또 없어서 저는 그 날 거의 11am~4pm 넘도록 벽보고 서있었어요. ICU사람들 다 나나님 성격알아서 그냥 저를 보고만 계셨지 올드쌤이나 수쌤도 나나님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 이후로도 저만 보면 환자 죽인다고 
오늘은 누구 죽이려 출근했냐 하셨고,

제가 동기들에게만 사실 어머니가 CRF(만성 신부전증)있으신데 신장이식도 수술 실패해서 HD(주3회 혈액투석) 하시는거 말했었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어느날은 저한테 와서

“니가 그렇게 재수없는 년이라 니 애미 아픈거야”

하면서 씨익 웃으셨는데, 그 날 밤 잠도 못자고 자취방 안에서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환자들도 처음엔 제가 죽인 거 아닌데 왜 저한테 그러시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후로도 몇 달간이나 저를 볼 때마다 재수없는 년, 저승사자, 환자 잡아먹는 년, 더러운 년 등으로 부르셨고 
나중엔 뭐가 진짜인지 모르겠고 제가 진짜 죽인 것 같고 괴로웠어요.

 

 

 


그리고 그 분은 대구 출신이시고 특정 정당 엄청 골수 지지자 이신데, 
당시 대선에서 박근혜후보를 뽑을 것을 강요하셨어요. 저는 뭐 실제 투표장에 따라 들어와 확인 할 수는 없으실테니 그러겠노라고 선생님 말씀이 다 맞다고 하고 넘어갔죠. 그런데 당시 ICU 간호사들 거의 대부분이 경상도 아니면 충청도 출신이셨어요. 저 말고도 경기도 출신인 분 또 있긴 했는데 나나님보다 윗년차였어요... 저한테 “북한이 쳐들어오면 서울은 금방 불바다 될텐데

경기도에서 자식낳아 키운 니 부모들은 병X이다. 다다음달까지 부모님 청주로 이사시키고 등본 떼와라” 하셨어요.

아니 제 부모님은 경기도 이천에 수십년간 사셨고 그곳에 직장도 있으신데 부모님 거주지까지 저한테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하셔서 그것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었어요.
결국 그 이후로 계속 니 부모 병X이다 라는 말을 나나님 심심하실 때마다 듣게 됐어요.

언어적 폭력은 비교적 증거 입증이 어렵지만, 신체적 폭력은 흔적이 남죠. 나나님은 언제나 반팔, 긴 바지인 펄럭거리는 연핑크색 유니폼으로 가려지는 부위만 때리셨어요. 저보다 나나님의 프리쌥티(그사람이 전담해 가르치는 후배) 였던 동기가 더 심하게 구타당했는데 다들 충청도에서 여기관두면 더 안좋은 데 갈 수 밖에 없다며 참더라고요. 그친구는 아직 다니고 있대요.
연락은 끊은지 오래지만... 

무릎뒤 발로차기, 쇄골아래를 주먹질하기, 명치때리기, 겨드랑이꼬집기, 옆구리 꼬집기, 등짝 팔꿈치로 때리기, 등짝스매싱 등등 이었죠. 겨드랑이 꼬집히는게 가장 기분 나쁘고 아팠고 서있다가 불시에 무릎뒤를 차여서 고꾸라지는 게 가장 치욕스러웠어요.

반팔티로 가려지는 상체의 많은 면적은 일년내내 보라색 투성이였죠 온전한 피부색이었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밤새 또 못자고 밤하늘 바라보며 울다가, 브래지어만 입고 탈의한 제 상반신사진을 찍어서 들고 노조에 가입하러 갔어요 (이후 수간호사에 말 안하고 노조 가입했단 이유로 수쌤한테 혼남..)

진짜 밤 새고 제정신 아닌 상태로 악에 받쳐서 찾아간 노조였는데, 임신순번제 안 지키고 셋째 임신했다가 보복성 근무로 당시 이브닝(1P~10PM근무) 연달아 7개인가 하셨던 분이 ICU에 계셨는데,
그분 7-7 이브 하고 퇴근하는 길에 병원 로비에서 유산하셨거는요  근데 그분도 노조에 안 왔는데 왔느냐고 제 사진을 쳐다보는 노조 직원의 말에 이 병원은 도저히 다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사직서를 쓰게 됐어요.
(보통 임신한 간호사에게 나이트 근무를 시킬수 없기에 임신을 순번을 정해 허락 받은 후에 해야했고 허락없이 임신하면 괴롭힘이 있었어요. 그분은 계획없이 셋째가 생겨 결혼 후 3년째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 곳에서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죠.)

엄마가 우리 딸 대학병원 간호사라고 여기저기 말해놨는데 관두면 안 된다. 말리셔서 못 관두고 있었는데, 그 날 엄마한테, 대학병원 다니다 자살한 딸 엄마 할래? 그냥 살아있는 백수 딸 엄마 할래? 하고 심한 말도 했네요. 엄마가 그 정도인 줄 몰랐다 집에 돌아오라 하셔서 그렇게 저는 퇴사를 했어요.

진짜 계속 다녔으면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출근할 때마다 건너는 병원 앞 오거리 쌩쌩 지나가는 찻길에 몸을 던지면 오늘은 나나 얼굴 안 볼 수 있지 않을까 수백 번 수천 번 상상했었거든요. 9년 전 일인데도 생생해요.

 

 

 


그러다가도 여기서 애매하게 살아나서 나나 환자 되면 나나가 엄청 괴롭히겠지. 안돼 청주에서 죽을 수는 없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횡단보도 들을 건넜어요.

더 많은 일화들이 있을텐데 그때 일기장도 썼었는데 그시절 일기장들 어디 있을지 모르겠네요. 당시 진짜 계급장 떼고 몸싸움 하면 제가 당연히 이길 것 같은 사람한테 왜 한번을 못 덤볐는지 모르겠는데, 지금도 9년만에 그 이름을 우연히 듣고 갑자기 palpitation(심계항진, 심장이 벌렁벌렁 하는 것) 완전 심하고 손떨리고 하는 걸 보면 지금도 저는 글렀네요.

뭐 이런 글 쓴다고 달라지는 것 하나 없겠지만 신규 간호사 님들... 부디 이게 아니다 싶으면 죽을 것 같다 싶으면 그냥 관두세요. 세상에 직업은 많고 당신 목숨보다 중요한 직장은 없어요... 그렇게 억지로 13개월을 버틴 제 자신이 그때는 대견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부질없고 바보같아요 이렇게 오래도록 두려워 할 일인가 싶고...

그 때 그 선생님이 결국 중환자실에서 오래오래 잘 계시다가 교수님이 되셨다는 소식에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참 허탈하네요 저는 아직도 얻어맞은 기억, MRSA(메치실린이라는 항생제가 안듣는 쉽게말해 악성 균 감염) 환자 에게서 석션해 낸 가래통을 제 머리에 쏟으셨던 날,

 

 


집에서 샤워기 아래에 서서 몇시간을 울며 머리를 몇 번이나 감았는지...
나나님은 모르실 테니까요......
나나님이 교수님이 되었다는 말에,,.. 그때 그 상의탈의한 사진 버리지 말걸....
그게 지금 또 왜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그소식을 당근마켓에서 만난 사람 무료로 네일아트 해주다가 알게된것도 어이없고....
오늘은 좀 속상하고 다시 한없이 쓸모없던 신규가 된 기분이네요 

 

재밌는 썰,괴담 보고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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