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나는 서울 서초동에서 작은 출판사에 다니고 있었다. 책을 좋아해서 주말이면 자주 동네 헌책방을 돌았다.
그날도 별다른 목적 없이 예전부터 눈여겨보던 골목 안쪽의 낡은 헌책방에 들어갔다.
가게 이름은 ‘문향서림’.
1960년대에 문을 열었다는 이 가게는 외관부터 오래돼 있었고, 내부는 빽빽하게 쌓인 책들로 가득했다.
가게 주인은 7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노인이었는데, 평소에도 말이 적고 늘 무표정했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주인이 먼저 말을 걸었다.
“지하실에도 책이 좀 있는데, 혹시 구경해 보시겠습니까?”
나는 망설였지만 호기심이 생겨 따라 내려갔다.
지하실은 좁고 습기가 가득했다. 형광등 몇 개가 깜빡이는 어두운 공간이었고, 오래된 단행본과 신문, 잡지가 쌓여 있었다.
구석진 선반에서 오래된 노트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붉은색 가죽 표지에 닳아 있었고, 표지엔 ‘1987년 여름’이라고 적혀 있었다.
호기심에 노트를 펼쳐 보니 누군가의 일기장이었다.
글씨는 정갈했고, 주인은 서초동 인근의 여고에 다니던 여학생으로 보였다.
“1987년 7월 14일 – 오늘도 그 남자가 따라왔다. 매일 가게 앞에 서서 날 지켜본다. 누구에게 말해도 믿지 않겠지…”
“1987년 7월 22일 – 지하실로 도망쳤다. 여긴 안전하다. 밖에선 그 남자의 발소리가 들린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글씨는 점점 흐트러졌고, 마지막 장에는 붉은색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7월 30일 – 문이 잠겼다. 나갈 수 없다. 누가 나 좀 꺼내줘요…”
갑자기 등 뒤에서 바람이 스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하실 출입문이 살짝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황급히 노트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지상으로 올라오자 주인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일기장에 대해 물었다.
그는 말없이 잠시 고개를 떨구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 일기장은 매년 여름이면 저절로 나타납니다. 87년 여름, 실제로 이 가게에 다니던 여고생이 실종됐거든요. 경찰은 끝내 찾지 못했지요.”
“지금은요? 그 지하실, 괜찮은 건가요?”
주인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이 나가자마자 지하실 문이 잠겼다면… 오늘은 운이 좋으셨던 겁니다.”
그 후 나는 그 헌책방에 다시 가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출판사 출근길에 그 가게를 스쳐 지날 때면 지하실 창문 너머로 누군가 희미하게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지난주, 내 사무실 탁자 위에 낡은 노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표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2025년 여름”
재밌는 썰,괴담 보고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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